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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kang Yu Kim

유 부 강

나는, 자연이라는 속살 위에
동양의 빛과 서양의 빛을 겹겹이 입혀,
그것을 담대하게 표현해내는
긴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I shall therefore put on the skin of nature
multiple tiers of light, both Eastern and Western.
I shall keep doing so rather boldly and
make that a long, continuing journey of 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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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브라운 Daniel Brown

미술평론가 / 작가 / 시각미술 온라인 저널 'AEQAI' 편집자

유부강이 그녀의 길고 생산적인 커리어에서 지금까지 선보인 전시작품들은 모두 “여정(Journey)”이란 제목을 붙였다. 그녀는 현재 거주 중인 신시내티로 오기 전에 그녀가 태어나고 예술 학교를 다녔던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현재 이 작품전에서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그녀가 거쳐 간 내적 여정(물론 그녀는 실제로 외적 여정을 거치기는 하였지만)의 외적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부강은 필자가 서예적 표현주의(Calligraphic Expressionism)이라고 부르는 스타일, 아시아에서도 특히 중국의 미술적 요소들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요소들이 뒤섞인 혼합적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그녀의 작품들은 추상표현주의의 고유한 특성인 제스처를 기반으로 하며, 유부강의 제스처는 서예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되었다. 유부강의 화법은 힘이 있고 자신감이 넘치며, 작품의 목적과 화가의 열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녀가 대학원에서 창작한 초기 미국 작품들은(그녀는 미술 석사 학위를 이곳에서 받았다) 주로 두 가지 장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장르들 중 하나는 한옥의 인테리어에 대한 기억들, 즉 몸짓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예적이며, 상실감에 사로잡힌 방대한 허구적 기억들이다. 이 한옥의 내부에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며, 유부강은 주로 구조물의 내부에 있는 기둥들을 따라 붓을 위아래로 움직임으로써 건축학적 아웃라인을 제시한다. 내부 조명들을 포착하고 창조해내는 그녀의 놀라운 능력은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으며 그녀의 작업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내부 조명의 포착은 또한 아시아 회화의 특징이며, 대부분의 종교에서 중요한 부분인 삶의 불꽃, 즉 내부의 빛을 조성해낸다. 또한 이 작품들은 유부강의 초창기의 내적 여정을 대변한다. 이와 동시에 유부강은 강력하고 역동적인 추상화들을 많이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중 일부는 겉으로 드러난 자신의 정체성을 다루며, 다른 작품들은 그녀의 내적 풍경을 이루는 산과 한국 지형의 다른 측면들을 추상화한 개념들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그녀의 강력한 제스처들 역시 이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드러난다.

 

자연은 유부강의 작품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과 바다는 그 본질적인 측면들로 추상화되어 그려졌으며, 이러한 본질들이야말로 중국역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들이 조성해내고자 했던 것들이다. 유부강의 작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녀가 커리어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그려온 풍경화들은 창조(Creation)라는 행위 자체를 반영한다. 그녀는 모든 작품들에서 강력하고 확실하고 대담하게 세계를 창조해내며, 작품들은 그녀가 삶의 여정에서 거쳐 간 길들을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들은 기억인 동시에 본질이다. 그녀는 또한 한지(韓紙) 위에 깊은 검은색 글씨로 자신의 정체성과 아시아의 예술·문화의 정체성을 모두 정의하는 서예에 대해 환원주의적 해석이 깃들인 작품들을 그렸다. 후기 구상화들 역시 서예와 표현주의를 기반하고 있으며, 이 작품들 역시 힘과 기억으로, 혹은 기억의 힘으로 가득하다. 미국의 땅이 광활하고 열려있으며 많은 곳이 텅 비어있듯이, 그녀의 미국 작품들은 많은 것들이 스케일이 크지만, 유부강은 지표면 밑의 흙조차도 살아있으며 생명력이 가득한 것(그리고 그녀의 강력한 내적 광원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리하여 그녀의 여정은 대부분 침잠한 색채들 강력한 제스처들 그리고 상징적인 그림들과 함께 계속된다. 물론 여정에 끝이란 없다. 유부강은 강력한 힘과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그녀의 긴 여정을 그림들에 기록해왔으며, 그녀의 여정의 출발점이었던 한국으로 다시 한 번의 여정 길에 올랐다.

 

- 평론 <Power and Passion> 에서 발췌.

Every art exhibition that Bukang Yu Kim has mounted over her long and productive career is called “Journey”, and her journey now takes her and her work back to Korea, where she was born and trained in art school, before she departed for America, where she still resides, in Cincinnati, Ohio. The paintings which she has made, many of which are on display in this Korean show, have been the exterior manifestation of her interior journey(though her journey has also been an external one).

 

Bukang Kim has created a hybrid style, consisting of elements of Asian, particularly Chinese, painting, with elements of American, mainly Abstract Expressionist, painting, in a style which I have called Calligraphic Expressionism. Her paintings are based upon the gesture, that defining characteristic of Abstract Expressionism, and Kim’s gestures grow directly out of calligraphy. Her brushwork is powerful and confident, and is defined by its clarity of purpose and its passion. Her earliest American works, which she made in graduate school (she received her Master’s in Fine Arts here), are mainly two genres, the enormous invented memories of the interiors of Korean houses, which are both gestural and calligraphic, and which are haunted by a sense of loss; there are no people in these interiors, and Kim mainly gives us the architectural outlines of her structures, with calligraphy running up and down columns in the houses. Her remarkable ability to capture and create internal lighting is already manifest in these paintings, and that ability carries throughout her work; it’s a defining characteristic of Asian painting, and creates an internal glow, a kind of spark of life, which is a huge part of most religions. And these paintings represent her earliest journeys inwards. Concurrently, Kim began to paint a lot of abstract work, powerful and dynamic, some of which deals with her own emerging identity, others of which give us abstracted ideas of mountains and other aspects of her homeland’s geography, which becomes Kim’s internal landscape. Her powerful gestures already appear in these early works.

 

Nature plays an enormous role in Bukang Yu Kim’s work; mountains and the sea are painted and abstracted into the very essences of mountains and seascapes, and essences are what the finest Chinese painters have historically tried to create. This large body of Kim’s work, which comes and goes throughout her career, mirrors the very act of Creation; she creates entire worlds in every painting, powerful and sure and bold, the paintings mark passages on her journey through life: they are both memory and essence concurrently. She has also painted reductivist interpretations of calligraphic strokes, deep blacks on Korean rice paper, which both define her identity and that of Asian art and culture together. A later body of large figurative paintings are also based upon calligraphy and expressionism, and they, too, resonate with power and memory, or the power of memory.  Many of her American paintings are enormous in scale, as the land here is indeed vast and open and often very empty, though Kim sees even the earth under the ground as alive, glowing with life(and manifested by her powerful internal light sources).

 

And so her Journey continues, with its generally muted palettes, powerful gestures, potent iconic paintings. There’s no ending to the journey, of course; Kim has documented her long journey through life, in paintings of vast power and enormous passion, and she now takes that journey back to Korea, where her journey began. 

 

Excerpt from critique "Power and Passion".  

김종근 Kim Jongkeun

 

미술평론가

그림을 본다는 것은 우리들 가슴과 그림이 만나는 것을 허락한다는 행위이다. 그러기에 그림은 우리에게 즐거움 때로는 놀라움, 기쁨 또는 가슴 벅찬 희열을 가져다준다.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는 “예술의 본질은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 형상을 버리고 마지막까지 추상회화를 보여준 마크 로스코 조차도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을 인간과의 소통에 둔 것은 놀라운 일이며 그것이 추상회화의 힘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 앞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작가의 간절함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위로와 치유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유부강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로스코 그림 앞에서 느꼈던 그런 경련과 떨림을 가졌다. 솔직히 슬펐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마음이 아팠다. 물론 그는 화폭 속에서 아무 말도 강요나 지시하지 않았지만 작품 속에서 작가의 절규하는 음성이 아프게 들려왔다.

 

그가 화폭 위에 펼쳐놓은 수많은 제스처는 참으로 아득했고,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온통 표현주의적이다. 마치 미술사가 로버트 린튼이  "인간의 모든 행위는 표현적이다. 제스처란 의도적인 표현행위이다. 모든 예술은 작가와 그 상황의 표현이며, 그 중 특히 감정이나 정서적 메시지를 방출 또는 전달하는 시각적 제스처를 통하여 우리를 감동시키고자 하는 예술이 바로 표현주의 예술이다”라고 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 했다.

 

100호를 웃도는 한지와 종이의 대작 라이프 시리즈 Life Series 에서 풍겨오는 강렬한 첫 인상, 전후좌우로 가로 지른 선들은 이 그림을 그린 작가가 설마 여류작가라고? 의심을 할 정도로 검고 붉은 선들로 난무하고 있었다. 이 작업들이 주는 인상으로 보아 화면은 오히려 조형적인 미보다도 감정이 훨씬 강조된 열정과 목소리가 돋보였다. 태풍처럼 아니 허리케인처럼 휘감는 그의 격정의 회오리는 강렬하게 휘두른 선들과 겹침으로 더욱 회화는 요동치는 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던 유부강 풍경화 작품에 빛의 표현이나 추구는 점진적으로 가려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 어떤 표현의 욕망이 화폭 가득 흘러 넘쳤다. 이렇게 회화는 선이고, 색채이며, 제스처로 이루어진 것임을 유부강 작품의 이미지들이 명확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리하여 수십점의 그림들은 격정의 순간과 감정의 정점에서 흘러내리는 결정체로 아픈 진주 같은 눈물로 내게 다가왔다. 아마도 작가에게 예술이란 인간의 본능적인 외침이나 표출 등과 동일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여졌다. 

우리가 표현주의 화가나 추상 표현주의 작품들에서 그런 특성을 빈번하게 보아 왔음은 결코 우연의 일치만의 아닐 것이다. 치열함이 화면을 격정적인 선의 붓질로 가득 차게 하고, 색채가 마그마처럼 화폭을 뒤덮는 뜨거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림을 보는 내내 궁금증이 쓰나미처럼 덮쳐왔음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특히 원색적인 색채와 검은색과 흰색이 중첩되며 만들어 내는 색채 대비나 하모니는 그의 언어가 주고 있는 의지와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예를들면 외롭고 쓸쓸하게 펼쳐진 겨울풍경 같은 스잔함과 앙상함이 때로는 신경질적인 선들과 부딪치며 충돌하는 작가 내면의 심경을 더욱 요동치게 하고 있다. 그것은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일조한 불안, 증오, 애정과 같은 인간의 본성을 격한 색채와 왜곡된 선으로 나타냈던 화법과 동일한 맥락으로 읽혀진다. 이 모든 것들이 주저 없이 내려친 붓질과 어울려 흡사 잭슨 폴록의 화폭처럼 폭발하고 있었다. 이렇게 그의 테마는 불투명하고 추상적이다. 야외 풍경을 그린 풍경화도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 풍경들조차도 서정적이고 자연적이기 보다는 플롯(plot)을 비틀어 음악적 긴장감을 성취 할 만큼 거친 리듬감으로 멜랑콜리하거나 을씨년스럽다. 혹시나 낭만적인 표현을 기대했던 사람들도 이내 폭발적이며 뜨거운 뚜렷한 음색으로 인해 신경질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연주처럼 아픔을 느낄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가 주목 할 만 한 작품인 150호 크기의 연작형태인 <Existence I, II, III>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세 명의 인물이 각각 서있는 입상의 작품인데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터프한 붓 터치에 감춰진 무표정의 인물들에서 비애와 알 수 없는 작가의 비극적인 스토리가 포착된다. 그럼에도 유부강은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면서 격정적인 표현의 심경표출로 그의 작품에 존재감을 극명하게 실현하고 있음은 우리가 가장 지켜 볼만한 부분이다. 풍경 작업들이 다분히 구상적인 경향에 채도 높게 표현되고 있지만 추상 작품들은 파토스적인 색채와 제스처로 충실한 감정의 작품세계에 전적으로 몰입하고 있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화면 가득히 투박하고 거친 선들과 강렬한 원색의 색채를 덧입혀 강인한 감정의 호소력을 얻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지금 작가는 이국땅에서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화폭 속에서 빅뱅처럼 발산하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날카롭게 비틀린 야산의 풍경 속에서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빛의 분광 속에서 다른 작가에게서 볼 수 없는 정직함을 토해내는 과정에서 그러한 상상은 입증된다. 그런 면에서 유부강의 작품세계는 진지하고 솔직하며 진실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알몸 그대로 보여주는 절대 추상표현 작가 군으로 분류되어도 좋을 것이다. 

김영호 교수가 지적한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기조로 난무하는 붓 터치와 세밀한 선”들이 거칠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그가 작품 속에서 명백하게 빛의 세계를 암시하는 <Sunrise>, <Sunset>, <White Mountain> 테마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빛의 세계에 머물기보다는 본능적인 인간의 모습에 서있음을 이 작품들은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는다. 

 

신시내티라는 미국의 낯선 땅에서 거주하는 에뜨랑제, 이방인으로서의 살아가는 추억과 삶, 그 대지와 하늘 아래서 날마다 가슴속에 펄럭이는 고향의 향수, 그리움, 인간의 숙명, 예술가로서 타고난 뜨거움. 그 모든 것을 노스탤지어에 실어 피처럼 토해낸 것이 바로 그녀의 피 같은 작품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침묵으로 가득한 내면의 울림, 그 헝클어진 풍경 앞에선 인간, 그 쓸쓸함에 고개 숙이고 그 아픔에서 우리의 삶을 위로 받고 치유 받는다. 그리고 그것이 유부강 회화가 우리에게 건네주는 진정한 위로, 진주 같은 눈물의 힘이자 생명력이다. 

- 평론 <헝클어진 풍경의 진주같은 눈물> 에서 발췌.

Viewing a painting is an act of the allowing the heart to meet the picture. That is why a picture at times brings us joy or surprise, pleasure, ecstasy that overwhelms us. “The essence of art is to heal the human being,” said the abstract painter Mark Rothko. It is astonishing indeed that even an artist who discarded concrete forms and pursued instead abstract painting till his last moment felt that the ultimate purpose of art was communication between artist and human being. Actually, that is the power of abstract art. Many viewers become immobile, with tears welling up, in front of Rothko’s artwork because they feel his pictures healing them with an earnest sense of comfort and consolation.   

 

Such was the sensations I had while looking at the paintings of Bukang Yu Kim, namely, convulsion and tremble (which I felt when viewing Rothko’s works). Frankly, I felt sad. My heart ached, to put it more accurately. In her art works I sensed a voice screaming out loud although that was not what she demanded verbally or otherwise. 

 

The multitude of gestures spread across her canvas struck me as completely expressionistic -deafening, as it were, like Der ferne Klang emanating from Franz Schreker’s musical compositions. As the art historian Norbert Lynton said, “All human actions are expressionistic. So are gestures; they are intentional acts of expression. All works of art are expressions of the artists and their circumstances. The fine art in particular that tries to move us through visual gestures either conveying or releasing emotions and/or affective messages represent the gist of expressionistic art.”* This is precisely the characteristics Bukang Yu Kim’s art work.

The first compelling impression I had of her Life Series painted on hanji(Korean rice paper) exceeding frame size #100 in was, All this by a female artist? For running them in all directions were dark and red lines that seemed to be making a transition from this world to the next one transcending the constraints of time-space. What I saw in her works was not so much of an esthetic quality as an emphasis on feeling and passion. Like a typhoon, actually more like a hurricane, her paintings sucked viewers into a world jolted by ebullient lines whirling about and overlapping with one another. Gradually, the expression and pursuit of light oft pointed out by critics gave way to a certain desire brimming over the canvas, awaiting an expression. Images of this kind prevailing in Bukang’s paintings clearly attested that artwork consists of lines, colors, and gestures. 

 

Dozens of her works thus approached me like aching, pearly teardrops falling as crystalloids from the top of ebullience and instantaneousness. To the artist concerned, it seemed, art holds a value and meaning comparable to the instinctive geschrel (scream) or expression of a human being. That we have observed such traits frequently in the works of art by expressionists and abstractionists is surely not a coincidence. Where does the intensity come from to fill the canvas with such passionate brush strokes engulfing it with magma-like colors? I must confess that it was a question that kept hitting me like a tsunami as I felt curious about the source of such an intensity throughout the exhibit. 

 

Especially notable was the contrasting or harmonizing colors generated by the overlapping of primary colors and that of black and white piling up on one another, from which one could discern the author’s intent and message revealed metaphorically through her particular language. The bleak and bare landscape of winter rendered lonesome, for example, clashed with the irritable lines, causing the author’s inner feelings to rock and shake furthermore.

 

I think this falls in line with the type of drawing that portrayed, by means of intense coloring, such human sentiments as anxiety, hatred, affection, etc. which had aroused the interest of expressionists in terra incognita. I found all this, along with Bukang’s brushstrokes executed with abandon, explode much as Jackson Pollock’s paintings do across the entire canvas. Thus her theme remains opaque and abstract, the considerable number of her landscape paintings notwithstanding. As a matter of fact, even her landscape pictures strike me as melancholic or dreary rather than romantic or naturalistic because their plot is so twisted that, with coarse rhythms, it achieves musical tension. People who expected romantic expressions too may readily feel the kind of pain that one feels when watching a performance full of temperamental beauty due to the explosive, fiery, and distinct timbre emanating from works of the artist under discussion. 

 

Her serial type of paintings done on canvas size #150, bearing the name Existence I, II, III, is no exception. Each of them has painted three standing figures stony-faced, hidden behind the brushstrokes so tough that their faces are nearly indistinguishable; in them, however, the viewer can detect the author’s grief and tragic stories. Bukang nevertheless has constructed her own unique style of painting to express her passionate emotions, clearly indicating that her works are there for all to see. And, in my mind, that is the most noteworthy element. Although her landscape works are generally conceptual and portrayed in high saturation, abstract ones tend to be fully immersed in a state faithful to feelings with pathetic hues and gestures. This is the very reason why, with strong primary colors imposed on crude and rough lines filling up the entire canvas, they develop a powerful grip on emotions. 

 

It appears certain that Bukang, currently residing abroad, is totally free to emit her sense of liberty inside her canvas as the Big Bang did long ago. Although this is my imagination, it is attested to nonetheless in the process in which she exhales candor seldom seen in other artists, be it a sharply twisted landscape of wilderness or a spectrum that defies knowing. In this sense Bukang might as well be counted as one among the absolutely abstract expressionists, showing her true naked self, serious and honest in terms of her art world. 

 

I wholly concur with Prof. Young-Ho Kim that “Bukang Yu Kim’s brushstrokes, which are reminiscent of abstract expressionism as it dances wildly about her canvas and the delicate lines” she draws with finesse bespeak the quintessence of her artwork. To be sure, her works called Sunrise, Sunset, White Mountain bear a theme obviously suggesting the realm of light but they also make it amply clear that her artwork essentially lies in humanity as it instinctively is rather than remaining in the domain of light. 

 

So I dare to define Bukang’s artwork as a bloody one, upon which she has spitted out (as one does blood) everything she had held close to her heart - memories of her life as a stranger in a city called Cincinnati, longing for home far away daily under the skies of a big country that America is, her destiny, and the passion she was born with. Now, she has them all thrown up on nostalgia. So here I am, bowing before her inner reverberations full of silence that would not show anything at all, before humanity facing a disheveled scenery, and the loneliness thereof; in this way I receive consolation and healing. This is in effect Bukang’s true gift of comfort, the strength and vitality of pearl-like tears, which we get from her works of art. 

Excerpt from critique "Pearl-like Tears in the Muddled Scenery".

성지은 Sung Jieun

미술사학자 / 미술평론가

  북미 대륙 서쪽 땅, 태평양을 접한 곳에서 드넓게 펼쳐진 대양을 마주보고 선 적이 있다. 마침 날이 좋아 구름 한 점 없던 그 때, 하늘과 바다는 어느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맞닿아 있었다. 나의 시선은 눈 앞에 보이는 바다의 검푸른 물결을 쫓아 저 먼 곳까지 뻗어나갔고, 이내 닿을 수 없는 곳에 다다른 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 아니, 실은 멈춘 것이 아니었다. 내 두 눈은 할 수 있는 만큼 이미지를 더듬다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나아갔을 때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거대한 바다 너머는 실로 지각과 상상의 영역을 넘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미술작가인 유부강이 그린 광활한 미국 중부의 대지도 이처럼 한국에서는 겪을 수 없는 경험, 대자연이 주는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서로 다른 환경은 동일한 인간에게 각기 다른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유부강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할 때 그 일생의 궤적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1960년대 초반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다녔고 이강소, 김구림 등의 동년배 작가들과 잠깐 활동을 한 후, 1970년 미국 중부의 신시내티로 건너가 반평생 넘게 그곳에서 살았다. 1990년에 신시내티 대학(University of Cincinnati) 회화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계속해서 미술작업을 해 지역의 유력한 미술작가로 자리잡았고, 2014년 신시내티 미술관(Cincinnati Art Museum)에서 큰 규모의 초대개인전<Journey>를 열었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이라는, 모든 것이 상이한 두 나라에서 인생을 보낸 작가에게 환경의 영향이 만들어낸 변화는 전적으로 무의식적인 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살았다면 이런 그림을 안 그렸을 거에요. 신시내티에 있기 때문에 이런 그림을 그린 거에요”라고 이야기했다. 미술사학자 오병욱이 지적하듯이,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작가는 이중적인 제약을 받는다...그들의 작품은 미국적인 동시에 한국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압박 하에서 어떤 것을 그리느냐에 대한 작가의 선택은 다분히 의식적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유부강은 한국의 관객과 미국의 관객이라는 이중의 관객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양의 그림과 서양의 그림이 너무 다른데, 그러면 난 무엇을 그려야 할까?”라고, 작가가 끊임없이 자문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유부강의 작품 세계는 동양과 서양을 잘 융합한 듯 보인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주요 평론들을 살펴보면, 그녀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테크닉을 동시대 서양의 스타일과 매끄럽게 접목”한다고 여겨진다. 2014년의 개인전을 겸해 나온 긴 평문에서 대니얼 브라운(Daniel Brown)은 Calligraphic Expression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작가의 작품들을 분석한다. 동양의 서예적 기법과 서양의 추상표현주의를 아우른다는 뜻임은 알기 쉽다. 실제로 유부강의 작업은 마치 획을 그어 글을 쓰는 것 같은 캘리그래피와 작가의 정서를 표현하는 표현주의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동양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서양 미술작가들보다 동양의 서예에 더 친숙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저 그뿐일까?

  유부강의 작업들은 대개 이중의 축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캘리그래피와 추상표현주의가 한 축이라면, 다른 축은 추상과 구상이다. 작가는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반추상이 유행했으나, 자신은 대상을 세세하게 그리는 구상에 능한, 즉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이었다고 회고한다. 신시내티로 이주해서 한동안 가정을 보살피는 데에 전념한 작가는 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림 수업을 기초부터 들으면서 다시 실력을 다지기 시작했다. 절의 종과 한국 전통 창호지문을 그린 <Temple Bell>(1988)과 <Morning Calm>(1988)은 작가의 작업 중에서 가장 구상적인 작품으로 대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묘사를 보여준다. 특정한 물건을 소재로 삼는 것, 특히 한국의 특정 시공간을 소재로 삼아 어떤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는 작업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시피해서, 이 초기작들이 미국에서 새로이 작품활동을 시작하는 작가에게 일종의 실험작이자 습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당시 작가는 당시 미술대학 교수가 던졌던 “당신은 누구인가?(Who are you?)”라는 질문, 그리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나는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고 있는 중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주지하듯이, 이 그림들에서 작가가 주목한 것은 다분히 한국적인 소재가 아니라 빛의 움직임이었다. 서양에서 빛이 밖을 내다보는 것이라면 동양의 빛은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다. 전자가 서양 원근법에서 볼 수 있듯이 사방에서 내려꽂는 직선적인 빛이라면, 후자는 아스라이 방 안을 채우는 촛불의 빛이다. 유부강의 그림들은 후자를 택해, 낮인지 밤인지 모를 시간에 창호지를 통해 빛이 스며 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충분히 대상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구상적이지만 동시에 작가의 자유로운 대상 왜곡이 보이는 추상인 이 그림들 이후에, 작가의 작업세계는 주로 정서나 개념을 그리는 추상과 자연 풍경을 그리는 구상으로 나뉘게 된다.

  유부강의 추상과 구상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소재다. 전통적인 풍경화가들은 어떤 장소의 풍경을 보고 그린 후 제목에 그 장소의 이름을 넣는 방식으로 그림에 구체성과 특정성을 부여한다. 타문화권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이는 지리산이나 낙동강 같은 생소하고 이국적인 지명을 기입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을 통해 자기 작업을 주목하게 하고 차별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부강은 그런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작가는 동양과 서양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리하여 보편적인 것들을 소재로 삼게 되는데, 음과 양, 삶, 존재 같은 추상적인 개념 그리고 바다, 산, 나무 같은 자연물 두 가지로 나뉜다. 이 그림들은 세상 한 구석에 존재하는 특정한 소재를 가리키지 않으면서도 가장 단순하고 포괄적인 단어로 그림 감상의 실마리를 준다. 관객은 자기 눈 앞에 펼쳐진 이미지, 대상에 대한 묘사와 작가의 주관적인 정서 모두를 담고 있는 바로 그 이미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유로운 연상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캘리그래피와 표현주의라는 이중의 축은 서로 어떤 관계일까? 유부강의 그림들은 작가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표현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istence>(1994)를 보면, 사람보다도 더 큰 캔버스의 푸르스름한 배경에 등신대의 인물 세 명이 거뭇거뭇하게 그려져 있다. 차가운 느낌의 파랗고 하얀 빛 위에 붕 떠 있는 검은 인물 덩어리들은 다소 암울하고 절망적인 정서를 자아내면서 동시에 거침없이 휘갈긴 필체에서 숨겨진 힘과 의지가 느껴진다. 에너지가 넘치는 필치는 작가의 특징이기도 한데, 두 캔버스가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는 <Land III>, <Land IV> (2004)에서도 힘차게 그어진 획들이 모여 본래는 주황색의 황무지만이 펼쳐져 있었을 너른 땅을 꿈틀거리는 에너지의 장으로 바꾸어 놓는다. 기운이 넘치는 일필휘지는 2003년 <Life> 연작에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연작 중 하나인 <Order>를 예로 들면, 가로 134cm, 세로 169cm의 커다란 한지 한 가운데에 일필휘지로 그은 두꺼운 검은 획은 그 크기와 존재감만으로도 관객을 압도한다. 

  유부강의 작업을 묘사하는 ‘표현주의’라는 단어는 사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더 깊은 연관이 있다. 한국 현대회화에서, 붓질 한 획 한 획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추상 또는 반추상 회화를 프랑스의 앵포르멜 회화 또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회화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액션페인팅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의 절정이 1950년대 중반이었음을 생각하면, 유부강의 작업을 추상표현주의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더구나 2001년의 <Yin & Yang> 즉, <음과 양> 연작에서 볼 수 있듯이, 화면 전면에 물감을 흩뿌린 듯 다양한 색의 획을 흩뿌린 기법은 추상표현주의의 전면회화(all-over)와 유사하다고 볼 실마리를 제공한다. 전면회화 기법은 자연물을 그린 일종의 구상 작업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검푸른 바다 표면 위에 비치는 두터운 하늘색의 빛을 포착한 <Splash!>는 제목을 알지 못하면 아래 위를 분간하기 어려운 전면회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작가의 작업들은 추상표현주의 이후에 나타난 1960년대 미국 화가들의 작업과 닮아있기도 하다. 다분히 추상적인 <What Do You Do?>(1993)에서 마치 다양한 재료로 해 놓은 낙서들을 겹쳐놓은 것 같은 모습이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아무렇게나 갈겨놓은 캘리그래피 그림들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Life> 연작의 커다란 한 획의 검은 선은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의 간결하면서도 두터운 검은 색면들과 유사하다. 

  그러나 유부강의 그림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는 분리되는 지점들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는 유럽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즉흥적이고, 자동적이며, 무의식적인 창작 행위를 기반으로 했다. 따라서 추상표현주의에서 보이는 자유로운 선들이 어느 정도 작가의 정서, 즉 무의식을 표현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부강의 선들과 자주 비교되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은 즉흥성에서 더 나아가, 작가의 특정한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우연성의 요소가 너무 큰 작용을 하고 있다. 그에 반해 유부강의 선들은 다분히 작가의 정서를 듬뿍 담고 있고, 또 이를 표현하여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추상표현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이미지 안에서 깊이감을 없애버렸다는 점이다. 추상표현주의의 절대적 지지자였던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이 점에 주목하여, 추상표현주의의 고유성이 깊이감 등의 환영을 없애고 물감이나 캔버스 같은 2차원성에 주목하게 하는 회화의 특정성(specificity of the painting)을 보여주는 점이라고 찬양한 바 있다. 실제로 노랑, 파랑, 빨강 물감이 어지러이 흩뿌려져 있는 폴록의 그림에서는 어떤 종류의 깊이감이나 공간감도 찾을 수 없다. 반면, 유부강의 그림들은 개념을 그린 것이든 자연물을 그린 것이든지 간에, 서로 다른 빛과 색을 가진 획들이 중첩되어 만들어내는 모종의 깊이감이 있다. 앞서 후기 추상표현주의와의 유사성의 한 예로 언급한 <What Do You Do?>도, 비록 특정한 대상을 알아볼 수 없는, 오히려 부재한다고 할 수 있는 추상화이지만, 검은 선들이 가장 깊은 층의 레이어를 이루고 그 위에 불투명한 흰 선과 주황색 선들이 교차하며 가장 가까운 곳에 파란 면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것은, 깊이감을 자아내는 획의 중첩이 작가가 면밀히 계산하거나 계획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 획들은 즉흥적으로, 빠른 속도로, 즉 일필휘지로 그려진 것이다. 이런 속도로 그림을 그릴 때에는 어떤 이성적인 판단이 개입할 틈이 없고, 오직 작가의 감 또는 실력만이 결과를 좌지우지한다. 작가가 그림을 그려온 50년의 세월이 주는 시간이 작가의 원숙함을 만들었을 것이고, 그것이 곧 테크닉으로 이어졌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예로, 소품인 2000년작 <Mountain Journey>에서는 검고 파란 바탕 위에 일필휘지로 날린 하얀 선이 산봉우리에 쌓인 눈을 만들어내고, 2002년작인 <Splash II>에서는 그 기교가 절정에 달아 그저 몇 번의 흩뿌림 만으로도 천 길 깊은 바다와 그 표면을 그려낸다. 이처럼 유부강의 작업들이 추상표현주의와 갈라서는 지점들은 작가가 구상력과 즉흥성이라는 일견 모순되는 두 가지 테크닉을 연마하고 밀어부쳤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세계가 보이는 이러한 특징들은 작가가 구상을 중요시했던 한국의 미술 교육과 추상표현주의의 긴 역사를 거쳐온 미국의 미술 교육 모두를 접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런 견지에서 봤을 때 더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캘리그래피라고 여겨지는 작가의 일필휘지들이 때때로 일종의 팝아트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What Do You Do?>, <Order> 등 개념을 소재로 한 그림들 뿐만 아니라 <Rooster>와 같은 그림들에서도 환영적 이미지를 간섭하는 텍스트들이 등장한다. 다른 선들과 마찬가지로 일필휘지로 갈겨놓은 이러한 ‘글’들은 때로 주황색이나 다홍색 등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색으로 다소 무거운 이미지에 경쾌함을 더하고, 글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아니라 의미나 심지어 소리까지도 지시함으로써 환영성을 깨뜨리고 자칫 닫힌 세계가 될 뻔했던 작품을 다른 세계와 연결시킨다. 그런데 이 텍스트들이 그 조형에 있어서 다른 선들과 구별되지 않으며, 따라서 한글이나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획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즉,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종류의 텍스트 삽입은 작가의 작업을 캘리그래피, 즉 ‘글쓰기’라고 이해할 실마리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90년대 초반부터 “아무 것이나 다 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이런 글쓰기와 같은 획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실로 미국적 욕망의 발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도 한국과 미국,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중의 축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유부강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다. 2014년 미국에서 열었던 전시와 동명의 제목인 이 전시는, 작가의 인생과 작업세계의 ‘여정’을 보여준다. 몇 십 년의 긴 시간에 걸쳐 자라나고 변해 온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뿌리와 환경이 나를 낳고, 교육이 나를 좋게 키웁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한국이라는 뿌리와 환경에서 나와 미국이라는 환경을 만나고 미술이라는 교육과 노력을 접하면서, 작가는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고 좌절하고 기뻐하고 그림으로 그렸을까. 

  전시장에 걸린 작가의 그림들을 다시 보자. 사실 그림들의 크기가 매우 커서 한 눈에 담기도 힘들기 때문에 보는 이조차 이들을 관조하는 눈으로 볼 수가 없다. 여백 없이 시야를 꽉 채우는 이미지의 장엄함에 압도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거대한 대양이나 광활한 대지를 볼 때 느끼는 숭고함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일찍이 칸트가 이야기한 자연의 숭고는 큰 폭포처럼 웅장한 크기로 인간을 압도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한계가 있는 인간의 시야를 꽉 채우고, 그 너머 가늠할 수 없는 곳까지 뻗어 있는 자연. 그 알 수 없는 존재에 인간은 경이로움을 느끼고, 두려움과 호기심을 갖는다. 게다가 유부강의 그림은 크기를 떠나서, 그 어떤 그림도 대상을 멀리서 관조하는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다. 대지를 그린 것이든, 나무를 그린 것이든, 그림의 시선은 대상과 같은 공간 안에 있다. 이것은 작가가 말한 것처럼, 서양의 풍경화는 주체가 풍경과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고, 동양의 풍경화는 주체가 풍경 안에서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는 구분법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유부강의 그림을 볼 때 우리는 그림이 이끄는 대로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 마치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에서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작가가 자신의 긴 여정을 마주하는 자세가 아니었을까. 눈앞에 펼쳐진 태평양의 영원성이 나를 집어 삼키더라도 그것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처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면서 이질적인 것들이 작가를 압도하더라도 그것과 눈을 마주치고 함께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땅과 바다와 나무와 같은 공간에 놓여 그것들이 가진 힘을 오롯이 느끼고 있는 그림 속 주체는 앞으로도 그 존재의 힘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대상을 구성해 만들어내는 힘찬 획들은 대상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일 뿐만 아니라,  그림 속 주체, 즉 작가의 에너지, 다시 말해 삶과 죽음과 존재와 자연을 대하는 작가의 에너지를 반영,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가능하다면 전시장을 찾아 직접 작품을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긴 세월동안 작가가 경험하고 쌓아온 것들을 목격하길 바란다. 그 안에서 작가의 여정을 상상하고 나의 여정을 대입해 보면,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1993년부터 올해까지, 24년 동안 그려온 <Where Do You Go?>(1993-2017)라는 작품이 보여주듯, 내가 지나온 길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면 그저 어지러움만 더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매 순간 마음을 비우고 눈앞에 펼쳐진 것에 침몰해 집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여정을 걸어가는 자세라고 유부강 작가의 그림들이 일러줄 것이다.

- 평론 <여정을 대하는 자세>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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